경북성지 16. 청송 노래산

관리자 2020.06.09 12:47 조회 수 : 119

청송 노래산

청송 노래산 교우촌은 청송군 안덕면 노래 2리에 있었다.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 살던 신자들이 신유박해를 피해 비교적 박해가 적었던 경상도로 옮겨오면서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유박해 이후 교우촌 형성되다

청송군은 경북 중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특별히 청송 안덕면에 있는 노래산(해발 743m)은 “산의 형세가 네 신선(神仙)이 걸어가는 발모양 같이 생겨 늙은 보래(神仙)들이 오는 곳”이라 해서 노래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801년 신유박해 후에 충청도의 홍주·청양·덕산 고을 및 전라도에서 피난온 신자들이 새로운 교우촌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다. 신유박해 이후 이곳으로 스며든 신자들은 을해박해가 터지기 전까지 거의 15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1814년 전국에 큰 홍수가 들고 뒤어어 기근까지 겹치자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다. 살아남은 자들도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죽을 형편이었다. 이때, 교우촌을 자주 드나들던 전지수란 자가 신자들을 밀고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 신자들이 붙들려가고 나면 아무 거리낌없이 약탈하려는 심보에서였다.


을해년 부활대축일에 불어닥친 피의 현장

1815년 부활대축일인 2월 22일쯤에 포졸들과 들이닥쳐 미사를 드리고 있던 신자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청송 노래산 교우촌에서는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 이는 고성대 베드로, 고성운 요셉 형제, 김화춘 야고보, 구성열 발바라, 서석봉 안드레아, 최봉한 프란치스코, 김윤덕 아가다 막달레나 등 모두 7명이었다. 이들 7명의 순교자들은 대구 경상감영에서 20개월간 옥살이를 하다가 1816년 11월 1일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되었다.


고성운 요셉 고성대 베드로 형제 등 체포

그들의 시신은 형장 근처에 묻혔으나 이듬해(1817년) 3월 4일에 기적적으로 친척과 신자들에 의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져 무덤 네 개에 함께 묻혔다. 이렇게 해서 노래산의 신자촌은 없어지고 살아남은 신자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칠곡 신나무골과 영천, 안동, 길안, 경주 진목정, 청도 구룡, 경남 언양 등지로 옮겨간 듯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 1. 칠곡 신나무골 관리자 2020.06.09 393
15 2. 왜관 가실성당 관리자 2020.06.09 290
14 3. 경주 진목정 관리자 2020.06.09 162
13 4. 김천 황금성당 관리자 2020.06.09 497
12 5. 상주 신앙고백비 관리자 2020.06.09 82
11 6. 상주 배모기 관리자 2020.06.09 227
10 7. 문경 여우목 관리자 2020.06.09 171
9 8. 문경 한실 관리자 2020.06.09 100
8 9. 문경 마원성지 관리자 2020.06.09 227
7 10. 문경 진안리 관리자 2020.06.09 200
6 11. 진보 머루산 관리자 2020.06.09 123
5 12. 봉화 우곡성지 관리자 2020.06.09 230
4 13. 봉화 우련전 관리자 2020.06.09 79
3 14. 봉화 곧은정 관리자 2020.06.09 61
2 15. 봉화 곰직이 관리자 2020.06.09 63
» 16. 청송 노래산 관리자 2020.06.09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