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124년 만에 금의환향한 이윤일 성인

관리자 2014.06.29 21:11 조회 수 : 1494

순교 124년 만에 금의환향한 이윤일 성인

제3회
성 이윤일 요한제를 맞이하여, 지난 1991년 1월 20일(일)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가 “1867년 1월 21일 바로 이곳에서 참수 치명하신
이윤일 성인은 1백 24년 만에 한줌 흙으로 다시 이곳에 오셨다.”라고 하면서,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우리 시대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물려줄 삶의
원천지”라고 축복하셨던, 이윤일 성인 유해를 관덕정에 모시던 날을 새기고자 한다.
이윤일 요한 성인 유해의 치명터에로 영구 봉안 계획은,
1990년 숙원이었던 관덕정 순교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1990년 12월 27일 이문희 대주교 주재 하에 ‘이윤일 성인
유해 봉안위원회’가 조직되어, 위원장에 이종흥 신부, 부위원장에 김시원, 총무분과에 김용길 신부와 이상열, 전례분과에 최휘인 신부와 김길수,
홍보분과에 이정우 신부와 박태봉, 행사분과에 최홍덕 신부와 유재수, 시설 및 재무분과에 김경식 신부와 서영진이 임명되었다. 위원회는 기념관이
완성되어 감에 따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1월 18일 마지막 점검을 하였다. 이윤일 성인의 유해는 참수터, 날뫼산(현재 대구 비산동), 경기도
묵리, 미리내 등 이곳저곳을 거친 긴 여행 끝에 4년 전인 1987년부터는 이미 성모당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이때의 유해 이송은 성모당에서
관덕정으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이듬해 1월 20일 이문희 대주교의 주례로 천주교 대구 대교구 제2주보 성인 이윤일 성인 유해 봉안 및 제단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대한치고는 너무도 따뜻했던 이날, 우선 성모당에서 제대를 열고 제대를 떠받치는 직사각형의 석곽 속에 모셔 둔 성인의 유해를
모셔내었다.
이 작업은 먼저 제대 양편 끝에 제대 높이보다 약 10cm정도 높은 네 개의 레일이 달린 수레 형태의 기구에 인부 네 명이
제대를 한편씩 들어 올려 앞쪽으로 밀쳐낸 후 끌과 망치를 이용해 봉합된 나무판자를 뜯어냈다. 그런 다음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붉은 비단으로 싼
금속상자를 석곽에서 제대 위로 옮겼다. 이문희 대주교는 최휘인, 이용호 신부와 이은진 위원의 도움을 받아 비단 천을 풀고 여닫이로 된 금속상자를
열어 한지에 싼 여러 개의 유해 중 하나를 들어내 작은 항아리에 모셨다. 나머지는 원래대로 상자에 모시고 붉은 비단으로 싸 성모당 제대 및 석곽
속에 안치했다. 그동안 작은 항아리에 모셔 붉은 비단으로 싼 성인의 유해를 들고 서 있던 대주교는 작업이 완료되자 유해 봉안차로
향했다.
국화와 백합으로 장식된 검회색 소나타(대구1고 9325)인 유해 봉안 차는 이은진 위원의 지프와, 경찰차, 실무위원차를 앞세우고,
보도진 차량들이 뒤따르는 가운데 성모당을 떠나 교구청 문을 나서서 평소 그분이 보셨으나 지금은 많이 변한 거리 남문시장 4거리, 계산 로타리를
거쳐 오후 2시55분경 관덕정 순교기념관에 도착하였다.
이문희 대주교는 유해를 모시고 차에서 내려 김경식, 서정덕 신부의 안내로 순교기념관
안으로 입장, 곧바로 지하경당으로 내려가 미리 열어놓은 제대 및 석곽에 이윤일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 성인유해가 입장할 때 경당에서는 성직자
14명, 각 본당대표, 신심단체 대표, 평협 위원 및 순교자 유가족들, 신학생 30여명이 참례하였다.
‘이윤일 요한 성인께 드리는 기도’가
바쳐지는 동안 순교기념관 제대를 덮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어 제단 축성식이 거행되어 이윤일 성인은 오늘 우리가 경당 제대에서 늘 접하는 성인이
되었다.
이날 드렸던 다짐 《선서》를 새기면서 오늘 또 한 번 새롭게 성인을 경당 제대에 모시고자 한다.

           
                                                                         
영남교회사연구월보 제26호(1994.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