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서태순 베드로 (1823 ~ 1867)

관리자 2018.05.02 11:12 조회 수 : 466


서태순(徐泰淳) 베드로는 태중 교우로, 충청도 청풍에서 서치보(徐致輔)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가르침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베드로의 가족들은 일찍부터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피신해 다니면서 생활해야만 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다.

장성한 뒤 베드로는 김 데레사와 혼인하여 충주 장호원(현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서 살다가 경상도 대구로 이주했다. 그러나 경신박해(1859-1860)로 체포되어 대구 진영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베드로는 관장 앞에서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교회 서적을 바치지도 않았고,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형벌이 계속되면서 팔다리가 끊어질 지경에 이르고, 여섯 달 동안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하게 되자 마음이 약해져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이후 베드로는 여러 해 동안 냉담 상태로 지내면서 교회를 멀리했다. 그러다가 이전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회두하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다. 그는 이때부터 다시 체포된다면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순교하겠다.’는 원의를 다지곤 했다.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온 베드로는 가족을 데리고 대구를 떠나 문경 한실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신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천주교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문경 포교들이 한실까지 들이닥쳤다.

1867118(음력 18661213) 포교들에게 체포된 서태순 베드로는 문경 관아로 압송되었다가 상주 진영으로 이송되었다. 베드로는 세 차례에 걸쳐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나는 천주교 신자이므로 결코 신앙을 버릴 수 없소.”라고 굳게 신앙을 증언했다. 그런 다음 함께 투옥되어 있던 김 아우구스티노, 서유형 바오로, 박 루치아 등과 함께 다시 한 차례 매를 맞고 상주진영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으니, 이때가 1867123~24(음력 18661218~19), 당시 그의 나이 44세였다. 순교 이후 베드로의 시신은 아내 데레사와 조카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등에 의해 거두어져 칠곡 한티에 안장되었다. 서태순 베드로의 순교 사실은 대구의 김 데레사와 조카 서상돈 아우구스티노가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