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덕정 이야기 3

관리자 2020.06.09 11:40 조회 수 : 62

● 영남 제일 순교 성지

대구의 옛 이름은 달구벌(達句伐)인데 조선왕조시대 1601(宣祖 34)년 경상감영(監營=도청)이 대구에 정착되고 대구(大丘) 도호부(都護府)가 됨으로써 영남지방의 행정 군사 경제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천주교를 사학(邪學=國敎 아닌 이단)으로 단죄하던 시대에 있어서 사학죄인은 국사범(國事犯)이므로 지방에 있어서 최종판결은 지방장관인 감사(監司=관찰사)가 결정했으므로 각 고을에서 체포된 신자들 지도급은 대구 감영으로 넘겨져서 처단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이므로 장대(將台)가 있는 군사조련장(練兵場)에서 집행되었다. 장대벌(將台伐)이라는 말은 연병장이란 뜻이다.
대구성 남문밖 아미산(峨嵋山) 언덕위가 참수(斬首)하는 사형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남문에서 서남쪽으로 200보 지점(현재 대구시 중구 계산동 245번지) 즉 동아쇼핑센터 서북 모퉁이 부근에 관덕당(觀德堂)이라 쓰인 현판이 걸린, 군관(軍官)과 별무사(別武士)를 선발하는 도시소(都試所)가 있고 그 앞 일대가 아미산 언덕바지 땅을 포함하여 넓게 자리잡은 연병장이었기 때문이다.

● 관덕방(坊)과 관덕당(堂)

관덕방은 옛날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의 서상면(西上面)에 속하는 14개 방리(坊里) 중 하나인 동리지명인데 관덕방을 관덕정리(觀德亭里)라고도 했다. 관덕방이란 동리 이름이 없어진 것은 한일합병 후 조선 총독부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일부는 명치정(明治町=桂山洞)으로 편입되고 일부는 덕산동(德山洞)으로 분활되어 없어지고 70년대에 덕산동의 일부가 남산2동에 편입되었다.
관덕당은 1749(英祖 25)년에 민백상(閔百祥)감사 재임시에 건립되고 일제시대에 상제교(上帝敎=천도교의 한派) 절이 되었다가 광복 후 1960년대 말에 헐리었다.

영남교회사연구월보 제12호(1992. 8)
** 故 윤광선 비오 선생님의 글 중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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