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성지 3. 성직자 묘지

관리자 2020.06.09 13:08 조회 수 : 620

3. 성직자 묘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누가 다녀갔을까? 이제는 이름조차 잊힌 한 사제의 소박한 무덤에 국화꽃송이가 놓여 있다. 구태여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위령성월이 아니어도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성직자묘지를 찾는 이들은 연중 끊이지 않는다. 묘지 입구에 새겨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경구는 매일 매일 부여되는 ‘오늘 하루’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비한 은총임을 느끼게 한다.
1915년에 조성된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성직자묘지는 물론 치명자나 옥사자들이 묻힌 순교 성지는 아니다. 이곳은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를 비롯해서 성직자 66명(2006년 12월말 현재)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곳이다. 모두 대구대교구가 조선대목구로부터 분리 창설된 1911년부터 지금까지 지역에 부임, 국내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선종한 목자들이다. 한국인 사제는 물론, 이국의 사제들도 있다.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주어진 오늘날과는 달리 과거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이 박해의 땅 조선으로 파견될 때는 머리카락을 잘라서 고국에 맡기고 올 정도로 목숨 걸다시피해서 전교에 임했다. 북방선교를 하는 사제들은 요즘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곳 성직자묘지는 ‘피(적색)의 순교지’는 아닐지라도, ‘땀(백색, 녹색 순교)의 순교지’이며,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망자들이 우리를 위해 비는 곳

풍랑이 몰아치는 갈릴래아 뱃전 같은 이 땅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들이 묻혀있는 곳, 대구 도심의 남산동 성직자묘지. 오직 하느님만 섬기며, 신자들과 웃고 울던 성직자들의 영원한 안식처다. 이곳에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위령성월(11월)이 아니어도 삼삼오오 모여서 기도하는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성모당에 오면 신자들은 누구나 교구청 한켠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는 대구대교구의 성직자묘지를 찾는다. 작은 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성직자묘지 제일 중앙 앞쪽에 서 있는 십자가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들어가다보면 어디선가 큰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오늘은 죽음이 나의 일이지만, 내일은 자네의 일일세. 단 하루도 허투루 살지 말게나.” 앞서 선종한 성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러 갔던 교우들은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위해 빌고 있음을 체험하고 돌아오게 된다. 하루를 살더라도, 반듯하게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제대로 살아야한다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 공간이 바로 남산동 성직자묘지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겸손함 배워야

죽음은 예외도, 순서도 없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먼저 닥쳐올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남은 내 생의 첫날이고, 신비의 샘인 셈이니 구정물로 살지 말아야 한다. 교만, 인색, 음란, 분노, 탐욕, 질투, 태만 등 칠죄를 벗고, 두 이레 강아지만큼이라도 진리의 눈을 떠서 기도하고,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이며, 현재속에 영원을 발견하는 사람이 인생을 극복한 사람이라고 했던게 아닐까.
교구청 성직자묘지에는 유난히 연세 지긋한 자매들이 많이 찾아온다. “내가 영세받던 때 서품받은 신부님이 저기 묻혀 있으니 나도 이제 갈 때가 다 됐제. 위령성월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기와서 기도를 드렸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 그렇게 마음을 비우며 준비하는 자매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까.


항상 깨어 준비하라

성직자묘지 화강암 십자가에는 마태오복음 24장 30절이 새겨져있다.
바로 공심판(=최후의 심판)의 순간을 나타낸 복음구절이다. 참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재림하면, 악인은 불에 던져지고, 의인은 하느님의 나라로 불려가 태양처럼 빛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한다. 다같이 하늘나라 혼인잔치에 초대받고도, 미련한 처녀들은 제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대구 성직자묘지에 묻힌 사람들

대구 성직자묘지에는 대구대교구가 조선대목구에서 분리된 1911년 이래 지금까지 95년 동안 국내외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선종한 66명의 성직자가 묻혀있다. 초대 교구장 안세화 주교, 문제만 주교, 서정길 대주교 등 교구장을 비롯, 전석재, 이기수, 이명우, 김경환(전 매일신문 사장) 몬시뇰, 이임춘(전 무학고 교장), 서인석(전 서강대 총장, 전 대가대 교수) 신부 등도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형님이자 대구결핵요양원을 운영한 김동한, 촉망받는 사제였으나 중국 선교 중에 갑작스레 임종 비보를 접하게 한 윤임규, 예비자들을 위한 대중적인 교리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를 지은 박도식, 본당 신자들과 성지 순례를 떠나는 날 아침에 선종한 이윤걸 신부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성직자묘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15년이다. 대구대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기초자료집 4 ‘교구장 공문 및 문서’(초대부터~6대까지)에 따르면 지금부터 92년 전인 1915년 8월 20일 초대교구장 안세화 주교가 대구 남산동에 400평 크기의 성직자묘지를 신청했고, 9월 4일 허가를 받았다. 가톨릭신문 창간 60주년 기념자료집 ‘드망즈 주교 일기’에도 안 주교가 4월부터 성직자묘지를 찾기 시작했으며, 허가를 받아내는데 테레사 수녀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1915년 11월 1일 드망즈 주교의 주례로 축성되었다.


◎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3동 225-1
◎ 연락처 :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대표전화 (053) 250-3000
◎ 홈페이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http://www.tg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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